작가노트 #15 – 일속산방(一粟山房)
일속산방, 61.5×72.8㎝, 한지에 수묵담채, 2015
치원 황상(梔園 黃裳, 1788-1870)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의 제자이다. 다산이 1802년 10월 강진 동문 밖 주막집에서 서당을 열었을 때 15살 황상이 집 앞에서 공놀이를 하다 다산을 만나 사제의 인연이 되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다산은 황상을 불러 삼근계를 가르친다. 이후 그는 평생을 스승의 가르침대로만 살았다. 일속산방은 전남 강진군 대구면 백적동의 30년 전 저수지가 만들어져 수몰되어 폐교된 용운초등학교 터의 뒤편에 있었다. 평생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살았던 황상이 젊은 날 스승 정약용이 가르쳐준 산속 취미를 잊지 않고 살다가 노년이 되어 작은 집을 지어 현실화한 것이다. 처음 황상은 이곳에 들어와 바위틈에 몇 칸 집을 짓고 가시덤불을 베고 막힌 길을 뚫어 물길을 흐르게 했다. 이렇게 끌어온 물로 꽃을 가꾸고 채소를 길렀다. 대숲도 일구고 손님이 찾아오면 약초를 캐고 아욱국을 끓여 대접했다. 이런 모든 삶이 스승이 써주신 글과 일치하는 삶이었다. 초의가 소치를 시켜 그린 「일속산방도」를 보면 집을 에워싼 산자락에 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 안에 세 채의 집이 있다. 그리고 집 왼쪽 위편 골짜기에 다시 한 채의 집이 바로 일속산방이다. 184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855년에 일속산방을 완공하였다. 일속산방은 좁쌀 한 톨 만한 작은 집이라는 뜻인데 이 세상에 잠깐 살다가는 인생을 아득한 바다 위의 낱알 한 톨에 견준 것이다. 자신은 좁쌀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좁쌀 한 톨의 몸으로 좁쌀 한 톨의 산에 살며 공명과 부귀를 뜬구름같이 하찮게 여긴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의 일속이 보잘 것 없고 미소해도 그 속에 광대무변한 자족의 세계가 있음을 기렸다.
그림은 소치 허련의 「일속산방도」를 바탕으로 일속산방 주위에 일렁이는 운무를 가득하게 하여 초월한 그의 깨닮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듯 현실의 장소가 아닌 이상의 세계처럼 그려 보았다. 운무는 수몰되어 직접 확인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담겨 있기도 하다.
열심히 하려면 부지런, 뚫으려면 또 부지런, 연마하려면 또 부지런해야 한다는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를 지키며, 노년의 시에서도 “아이에게 거듭거듭 부지런 하라며, 스승께 받은 대로 사네” 라고 한 황상의 삶에 나를 비춰본다.
–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