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18 – 연암 박지원 초상(燕巖 朴趾源 肖像)
연암 박지원 초상, 59.5×44㎝, 비단에 채색, 2017
연암 박지원은 새로운 문물과 지식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와 경제를 꿈꾸던 북학파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그의 뛰어난 문학적, 사상적 수준을 볼 수 있는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문사들과 필담을 나누는 내용을 보면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혜안이 놀라웠다. 여정의 순간순간이 그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고 언어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읽어내는 놀라운 문장력에 감탄하였다. 이렇게 뛰어난 문학적 예술성과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 그리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는, 박지원이라는 위인이 우리 역사에 존재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2년에 걸쳐 10장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다. 12번째 그림을 전시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우연히 박지원의 후손을 뵙게 되었다. 첫 번째로 그린 초상화와 상당부분 일치함에 놀라워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출품한 작품은 그 첫 번째 그림이다.
심의를 입고 복건을 쓴 유복차림의 작품으로 박지원의 손자 박주수가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는 박지원 초상을 기본으로 인상이 바뀌지 않는 범위에서 인체의 얼굴비례를 벗어난 눈, 코, 입의 각도를 최대한 맞춰 주었다. 소실점의 각도를 맞추는 과정에서 인상을 벗어나는 경우는 기존 인물상의 인상을 우선으로 하여 사실적 변형을 적용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한 기존 초상화의 얼굴 표현에서 호분사용이 부자연스러워 전체적으로 하얗게 들떠있는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였는데 아들인 박종채의 과정록에 기록된 얼굴이 붉고 울화증이 있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상기된 혈색으로 배채 하였다.
전체적으로 초상화 제작의 근거는 박종채의 과정록이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 박지원은 안색이 불그레하고 윤기가 났으며 눈자위는 쌍꺼풀이 있고 귀는 크고 희었다고 한다. 광대뼈는 귀밑까지 뻗쳤으며 긴 얼굴에 듬성듬성 구레나룻이 나고 아마에는 달을 바라볼 때와 같은 주름이 있었다고 한다. 몸은 키가 크고 살졌으며 어깨가 곧추 솟고 등이 곧아 풍채가 좋았다고 하였는데 이를 증명하듯 담옹 김기순이 본 연암은 태양인의 체질을 갖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연암은 얼굴과 어깨를 포함한 상체가 발달한 체형으로 여겨진다.
복장은 성리학자들의 초상화에서 법복처럼 애용되었던 유건과 심의이다. 칠흑같이 검은 유건은 화면 아랫부분의 부드러운 흰색 심의와 대조를 이루며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강한 시각적 효과를 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정치하고 무겁게 묘사된 얼굴 부분과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호응을 이루게 하였다.
–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