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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고도 다르게: 이동원의 『梅花喜神譜帖』에 부쳐 – 정민

화가 이동원이 『매화희신보첩』을 펴냈다. 『매화희신보』는 송나라 때 송백인(宋伯仁)이 매화 그리는 법을 판화로 제작해 간행한 가장 이른 시기 화보의 이름이다. 원래 책은 모두 100폭의 그림에 제목을 달고, 그에 맞는 오언절구 한 수 씩을 얹었다. 매화의 한 살이로 꾸며, 처음 꽃망울이 부프는 단계에서 꽃술이 큰 꽃과 작은 꽃으로 갈라, 여기에 막 피려 하는 것과 활짝 핀 것, 흐드러지게 핀 것, 지려 할 때와 열매를 맺는 단계 등으로 갈라서 그렸다. 이것을 이동원이 오늘에 맞게 재해석해서 전혀 새롭고도 예스런 매화보로 엮어냈다.

송백인의 『매화희신보』는 19세기 초 청대 문인들에 의해 다시 주목되어 큰 상찬(賞讚)을 받았다. 2008년 중국 北京圖書館出版社에서 간행한 영인본에는 청대 유명 문인들의 제발이 앞뒤로 빼곡하다. 황비열(黃丕㤠)과 전대흔(錢大昕), 오양지(吳讓之), 손성연(孫星衍), 오매(吳梅)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문인학자들이 이 책에 바친 헌사가 이 책의 가치를 한층 빛나게 해준다.

여러 해 전 어느 전시에서 황비열 손성연 등과 생전에 교류가 있었던 추사 김정희의 글씨 중에 ‘매화희신(梅花喜神)’이란 것을 보았다. 당시에는 그저 매화를 좋아한다는 뜻인가 보다 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추사 또한 이 책을 보고 나서 이 글씨를 쓴 것임을 처음 알았다.

‘희신(喜神)’이란 글자대로 풀이하면 정신을 기쁘게 해준다는 뜻이 되겠지만, 전대흔은 “매화보를 그리고서 표제에 희신이란 글자를 연결한 것은 송나라 때 속어로 형상을 묘사하는 것을 일러 희신이라 한 까닭에서다.(譜梅花而標題繫以喜神者, 宋時俗語, 謂寫像爲喜神也.)”라고 풀이했다. 희신이 송나라 때 속어로 사생(寫生)의 의미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매화희신보』란 매화사생첩이란 뜻이다.

일찍이 석사논문 작성 당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화가가 900년만에 이 화첩을 새롭게 해석해 이번에 『매화희신보첩』을 펴냈다. 작품 하나하나가 옛 법에 뿌리를 두었으되 자기만의 시선을 담아, 법고창신(法古創新), 지변능전(知變能典)의 헌사가 아깝지 않다. 사실 판화로 새긴 것이라 원화에서는 생동감을 찾기 힘든데. 그녀가 재해석한 매화희신 연작들은 같고도 다른 상동구이(尙同求異)의 저력이 느껴진다. 이제 송백인의 체재에 따라 새 연작 110폭을 배열하고, 추사의 글씨와 원본의 편영(片影)을 함께 얹어 세상에 선보인다.

세상은 손쉽고 눈에 예쁜 것만을 따르므로, 아무도 옛길을 따라 옛 법을 찾지 않는다. 옛길은 도처에 가시덤불이 가로 막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긴 시간 말없이 붓과 종이로 나눈 대화의 시간이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있다. 그 오랜 반복과 온축의 시간을 건너와, 900년 만에 옛 길이 새 길과 만나 난만한 매화동산을 환히 밝혔다. 우리 화단에 그녀가 있어, 옛것에서 빌려와 지금을 말하는 차고술금(借古述今)의 전언을 건네는 것을 우리는 실로 자랑으로 안다.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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