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특별전 「여담재, 매화로 열다」에 부쳐 – 이혜경
「여담재, 매화로 열다」라는 전시 제목이 말해주듯이 서울여성역사문화공간 「여담재」는 개관식에 앞서 매화 전시로 문을 연다. 겨울의 끝자락, 언 땅에서도 남몰래 피는 매화처럼, 봄을 불러들이듯 제일 먼저 피어나는 매화처럼, 여담재」도 개관을 재촉하듯 매화전시로 먼저 손님맞이를 시작한다.
매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때로는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고, 이념과 믿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환상적 전설이 되기도 하고 일상의 삶에 멋을 더해 주는 각종 생활용품의 장식과 문양이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매화는 단연 유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문인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개관특별전의 작가 이동원의 매화 그림은 바로 그 문인화의 전통 위에 서 있다. 매화만을 이십 년 가까이 그려온 이동원 작가는 추위 속에서도 피어나는 매화처럼 청빈 속에 살아가는 깐깐한 선비의 기개와, 눈 속에서도 남몰래 풍기는 매화의 향기처럼 군자의 덕조차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한 듯하다. 거기에 더하여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거듭하며 남성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를 온전히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림, 예술로 재창조하였다. 즉 전통의 긍정적/부정적 계승을 성취한 것이다. 가히 여성 예술의 새로운 성취라 할 만하다.
서울여성역사문화공간 「여담재가 수행해야 할 기본 과제 중 중요한 것은 여성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는 여성만의 역사를 다루겠다는 것도 아니요, 기존의 남성 중심의 역사관을 그대로 놔둔 채, 게토화된 방식으로 여성 역사를 다루겠다는 뜻도 아니다. 전통과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 재구성함으로서 전체 역사가 온전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작가 이동원의 작품도 이와 같이 내게 다가와 매우 반가운 만남이고, 서울여성역사문화공간 「여담재」의 개관전으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녀의 작품 중 특히 이번에 전시된 「설매」를 처음 보았을 때 마치 그 그림 한 폭에서 여성의 역사를 보는 듯 했다.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어찌 여성의 역사를 몇 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그러나 「설매」를 보면서 구불구불 굴곡진 나무등걸의 세월과 사나운 눈발 속에 피어난 단아한 매화를 보면서 마치 여성의 삶과 역사를 보는 듯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끝내 꽃으로 피어나는 그것은 희망이기도 하다.
송나라 때 처음 제작되었다는 매화 작법의 교본이라 할 ‘매화희신보’를 재창조한 이동원의 「매화희신보」를 보노라면 그녀만의 수련의 세월과 개성을 느낄 수 있다. 강한가 하면 우아하고, 고결한가 하면 요염하기도 하고, 굴곡짐 속에서도 품격이 느껴진다. 그 모든 것이 안정되게 통합되어 있다고나 할까.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문인화가 한 여성 작가에 의해 온전히 여성예술로 거듭났듯이 여성 역사도 이와 같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여성들의 문화와 윤리를 더욱 드높히고 바로 세워 가는데 매화는 좋은 길동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서울여성역사문화 공간 여담재는 매화로 문을 연다.
서울여성역사문화공간 여담재
관장 이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