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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의 탐매 – 김현숙

모든 꽃이 다 떨어진 뒤 홀로 곱고 아름다워
작은 동산의 풍정을 가득 하였구나
성긴 그림자를 비스듬히 얕은 물에 드리우니
그윽한 향기 어스름 달빛에 떠도누나

– 임포의 ‘산원소매’ 중 1 수 –

혹한의 풍상을 이겨내고 수줍은 듯 소담한 꽃봉오리를 터트려 봄을 알리는 생태적 특성으로 인하여 매화는 은사, 절의(節義)의 지사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매난국죽’ 모두 군자의 절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사군자 화목 중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매화는 아름다움을 안으로 품고 추위의 고통을 견디는 함장미, 은은한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암향’의 미학으로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선비의 준엄한 실천 윤리를 낳기에 이르렀다. 수령이 백년은 족히 넘는 고목의 굵고 마른 나무 등걸은 마치 용이 몸을 틀어 하늘로 치솟는 듯 하고 새 봄을 맞아 솟아오른 연한 가지 위에 꽃망울이 듬성듬성 피어 오른 자태에서 신구와 음양의 드라마틱한 조화가 현시되고 있어 철학과 예술의 소재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선조들의 진한 매화 사랑, ‘매벽’ 일화를 거론하자면 한 나절이 다 가도 모자랄 것이나 그 중 퇴계 이황이 단연 손꼽힌다. 키우던 매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남길 정도로 혹매가였던 퇴계는 우리나라 문학사상 최초의 단일 소재로 집필된 자작, 친필의 단행본 시집인 『매화시첩』을 펴냈다. 매화의 생리에서 철리를 구했던 퇴계에게 매화는 성리학의 본체인 태극(太極)이자 이(理), 성(性), 마음(心), 도(道)의 다른 이름이었다.

절의(節義)의 지사적 면모만이 부각되던 매화에 신바람이 불었다. 19세기 초중반, 매향이 바다처럼 널리 퍼지듯 매화를 장쾌하게 흩뿌린 한 예인이 등장했으니 우봉 조희룡이다. 자신의 거처에 ‘매화백영루’라는 당호를 걸고 호를 매수라고 하였다. 매화시가 새겨진 벼루와 ‘매화서옥장연’ 먹을 사용하여 그린 매화병풍을 둘러치고 매화시백영을 지어 큰 소리로 옮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를 달여 마시는 등 매화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벽의 일상을 보냈다.

우봉의 속세적 난만함은 추사 김정희의 고매함 맞은편에 당당한 자리를 확보했다. 꽃잎이 화폭을 채우며 부유하는 우봉의 매화 그림은 이 전에는 볼 수 없는 방만함이자 추사의 미관과는 다른 기괴함이며 새로움이었다. 어몽룡의 〈월매도〉에서 보듯 절제된 구성, 간결한 필선, 풍부한 여백이라는 묵매도의 교본을 깨고 붉은 홍매와 격정적 붓질로 드라마틱한 감성을 극대화함으로써 흥건한 흥취의 세속 문화의 등장을 과시한 것이며, 형사를 초월한 심의의 표현이되 흐드러지다 사라져도 좋은 한 순간에 대한 예찬이었다.

굵은 고목의 뒤틀림과 가지의 각진 꺽임, 성근 꽃의 암향이 번지는 달밤의 서늘한 정취를 구하는 이동원의 탐매 구도는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조희룡과는 확연하게 다른 지점이지만 그렇다고 이황처럼 태극과 철리를 탐구하는 어몽룡의 〈월매도〉처럼 매화의 세한심과 함장미를 갖추면서도 김홍도의 〈노매도〉처럼 봄날의 흥취가 가미된 어느 지점에 이동원의 자리가 있다고 보인다.

매화는 참으로 오랜 동안 남성들, 그것도 학자연하는 고매하신 선비들의 꽃으로만 존재했다. 꽃은 여자를 나비는 남자를 지시하는 통속적 배치로서가 아니라 군자의 상징이자 가치로서의 꽃이라는 점에 매화의 독점적 지위가 있었고, 조선의 군자들은 매화를 남성으로 의인화하여 ‘매형, ‘매군(梅君)으로 칭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구성했다. 그 울타리 주변에는 매화, 매향, 월매, 매청 등 매화의 명칭에 기댄 기생들의 이름이 있지만 탐매의 주체도, 은애의 대상도 아닌 실체 없는 이름들이었다. 그러한 상황이니 난을 친 기생은 있어도 매화를 그린 기생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신사임당과 그의 맏딸 이향금의 매화도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신사임당 그림 세계의 본령은 ‘초충도’이지 매화도는 아니다. 이 점에서 보면 청정과 순수와 소담을 한 체에 모두 갖추는 절묘한 경지를 추구하는 이동원의 ‘탐매’는 여성화가라는 측면만으로도 독보적 행보로 주목할 만하다.

춘설이 한창인 시기에 탐매의 주체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톤 터치’한 이동원의 탐매전이 열렸다. 오늘날에도 매화를 그리는 대부분의 화가들은 역시 남성 화가들인데, 시대의 문화와 가치를 따른 탓인지 설악산 꽃의 화가 김종학, 중도(中道)의 생활을 그리는 이왈종을 비롯하여 대체로 조희룡의 맥을 잇는 경우가 많다. 한편 동양화가로서 월전 장우성과 문봉선의 묵매도를 이동원과 비교하면 오히려 이동원의 묵매에서 내재된 강인함과 처연함이 느껴진다. 마디마디 고된 생으로 인해 맺힌 매듭들이 묵매로 피어나 뜻으로 펼쳐진 때문일 것이다.

김현숙 (미술평론가, 이응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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