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정신으로 잇는 전통과 현대성, 이동원의 그림 – 박정구

일본화(日本畵)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아울러 현대적인 미감을 담아내는 일은 해방을 맞은 ‘동양화단’의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조선 말 전통화단의 쇠잔에 더하여, 일제 강점기 동안 서양화의 도입과 확산이 이루어지고 전통회화는 일본화풍이 유입되어 조선미술전람회라는 관전(官展) 체제를 통해 그 양상이 공고해져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도래한 해방으로 동양화단은 부각된 왜색(倭色)이라는 치부를 씻어내고 아울러 서양화에 대응하는 현대적인 미술로의 전환이 절박했던 것이다.

전통을 계승하며 새로운 길로 나서는 것은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후 많은 화가와 여러 단체가 ‘현대 한국화’를 지향하는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했고, 개별적이거나 부분적인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에서는 일정 부분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화가 형식이나 내용에서 전통을 잘 계승•간직했다거나, 모두가 수긍할 만한 변화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전통의 일신(一新), 혹은 현대화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근본이나 정신을 향한 연마와 습득이 간단하지 않은 데에 있다 하겠다. 그런 이후에야 비로소 전통의 자기화(自己化)가 가능하며, 해석과 변용에 따른 각자의 노선과 지향도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의 바탕이 되는 공부와 수련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제까지 대부분의 실험은 형식이나 내용에서 서양의 것을 빌려오거나, 맥락의 전후가 뚜렷하지 않은 가치에 근거한 ‘범동양적’ 혹은 ‘비서구적’ 또는 모호한 동양성이나 한국성에 의탁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을 충분히 습득하고 이해할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거나, 아예 불필요하게 해주면서도 그림의 근거가 동양, 혹은 한국에 있음을 주장하기에도 적절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형식이나 외관만을 흉내 낼뿐인 전통의 맹목적 추종이 광범위하게 존재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개별적인 노력이 아니고서는 공적인 교육기관을 통해서 전통회화의 정신과 기법을 깊이 익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다수 젊은 ‘한국화가’들의 실험은 지필묵을 서양화를 포함한 여러 재료 가운데 하나로 여겨, 재료 자체가 지니는 동양성 또는 한국성의 ‘아우라’에만 의존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서양화를 전공하여 현대미술이라는 자유로운 영역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여지를 버려두고, ‘전통’이라는 것과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거나 짐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동양화’ 또는 ‘한국화’를 선택하는 것이 과연 깊은 고민을 통한 자율적 선택이었느냐 하는 문제와 더불어, 전통회화는 이제 지난 20세기 중후반과는 또 다른 존립의 위기 상황 속에 놓인 듯이 보인다.

이러한 언급은 곳곳에 크고 작은 논란의 여지를 지닌 매우 거친 수준의 것이기도 하며, 이제까지 현대 한국화단이 보여준 다양한 시도와 연구가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긍정적인 사례가 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세계성과 지역성(또는 한국성)과 같은 보편과 특수의 문제나, 전통과 혁신 같은 시대정신/가치의 문제가 부각된 지 오래 되었음에도, 상대적으로 유사한 근•현대사를 겪은 이웃나라에 비해서도 미술 분야에서 그 성과물이 별반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동원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공부하였다. 그 후 대다수 동료 선후배들과는 달리 긴 시간 다시 전통회화를 익힘으로써 그 안에 내재하고 있는 현대회화로서의 존립 가능성을 구체화하고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미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친 그는 ‘현대회화로서의 한국화’ 혹은 ‘한국화가로서 작업하기’를 충분히 습득하고 작가의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그에 더하여 십년 넘는 시간을 서법과 전통회화의 기법을 다시 익히고, 거기에 담긴 정신과 그러한 전통을 세웠던 선인들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전통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그의 고집스러운 기질이 자리하고 있다. 전통 혹은 선인의 성과에 적당히 기대어 미처 그것을 모방조차 하지 못하는 역량을, 마치 현대적 변용이니 창조적 재해석이니 운운하며 가리는 일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불혹을 넘어선 그에게는 늘 스승을 따르고 공부하기 위해 인내하는 ‘학생’의 자세가 함께 한다.

전통을 오늘에 새롭게 하는 길이 반드시 그것을 충분히 체득하는 것에서만 비롯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충분히 농익은 시대 여건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그러한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한 두 사람의 특별한 개인이 마치 머뭇거리던 물고기 떼의 도약을 촉발하듯 도화선 같은 역할을 했던 예는 특히 예술의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라는 표현이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법을 익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열었던 선인들의 정신세계까지도 폭넓게 공부함으로써, 전통회화를 과거의 삶을 담은 지나간 형식이 아니라 시간을 넘어서는 삶의 가치를 지닌 생생한 형식으로서의 현대회화로 재현하려는 그의 우보(牛步)는 곁에서 보는 이에게 신뢰감을 준다.

이번 개인전에는 그간 전통회화를 공부하면서 확인한, “한국화와 바탕을 같이하는 선인들의 정신이 빛으로 남은” 우리 땅 곳곳의 풍광과 그분들의 일화를 담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몇몇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지만, 또 다른 곳들은 기록이나 그림, 혹은 흔적으로만 남은 우리 주변의 오랜 생활터전들이다.

이동원은 흠모의 대상이 되어온 조선 이래의 인물들을 꼼꼼히 공부하여 그들의 정신이 깃든 장소를 찾고 택하였다. 그런 뒤에 문헌 공부와 답사를 병행하여 스스로 배우고 체득할 뿐 아니라, 구체화된 작품을 통해 감상자 또한 선인들의 삶과 그 삶이 담긴 자연, 나아가 그것을 그린 그림에 공명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개인전과 몇몇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매화도에 이어 필력을 더해 완성한 매화도와, 늘어뜨린 모시에 그린 매화 사이를 걸으며 감상하도록 한 설치작업을 통해, 이상적인 세계를 현실 공간에 실현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뜻이 그저 가슴 속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며, 현재를 사는 우리의 정신과 삶을 통해 공감하고 또한 하나씩 구체화할 수 있는 세계임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여러 면에서 세계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제를 이룬 나라임을 자처하면서도 국민의 행복지수나 삶의 질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국민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부탄의 사정을 비교한 최근의 기사와 같은 예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 정신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는 보다 더 이상적인 세계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바로 그 사회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로서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에 근거한 화법으로 그 전통을 세운 이들의 정신이 스민 자연 속 장면을 담은 이러한 그의 그림은 앞으로 현대인의 삶과 의식이 담긴 현대회화로의 온전한 이행을 전제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차후의 행보 또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그의 그림은 애초부터 현대미술로서의 역할을 지향하는 것이기에 보수적인 정통의 권위 언저리에 머물 염려를 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왕성한 실험정신으로 전통을 넘어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 예술의 본령이었음을, 그리고 혁신이란 우리가 이제는 전통이라 부르는 그것을 한 때 일컫던 다른 이름이었음을 늘 기억하기 바라며 그의 정진을 응원한다.

박정구(KSD갤러리 객원큐레이터, 한국미술연구센터 연구위원)

 

 

Spiritual continuation of tradition and modernity, artwork of Dongwon Lee

Following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imperialism, the most exigent issue of Korean artists was being relieved of the influence of Japanese art and modernizing its own art.At the end of Joseon Dynasty, the introduction and proliferation of the Japanese and Western style of painting, along with the cultural suppression by the Japanese government lead to the fall of traditional Korean art. Hence, a recast to relieve it of its Japanese influence was indispensable and a modernised approach to Korean art was imminent.History demonstrates that the succession of tradition and modernisation is easier said than done.It is agreed among many that continuous experimentations, attempts and studies towards modernizing Korean art did achieve positive results to a certain degree. It is hard to say, however, that the form and contents of “modernised” Korean art of today has successfully inherited its tradition.

Among many reasons that make modernisation of art a difficult process, the complexity of its studies and acquisition of its spiritual roots is the greatest factor.The actualisation of the artist’s own interpretation of a tradition can only occur once a strong fundamental understanding of the tradition is established. As a result, taking a fresh approach on tradition requires an immense amount of time and research into areas other than the skills of painting itself.It is hence why most experimentations with modernizing Korean art had the tendency to imitate Western styles or have had a vague sense of Orientalism without a strong basis that parallels the context of traditional Korean art. This popular approach arose from the fact that it did not require artists to fully understand and acquire the traditions of Korean art, nor did it require them to spend an immense amount of time on studies and research. It seemed plausible to assert such artwork as having its fundamental roots based within the boundaries of traditional Korean art. On the other hand, it is undeniable that attempts to blindly follow the form and appearance of Oriental art occurred extensively as well. Hence it was almost impossible for artists to acquaint oneself with the spiritual context of traditional Korean art at educational institutions without the individual efforts to seek its knowledge. As a result, the majority of young Korean artists regarded Jipilmuk (Set of oriental painting materials: Paper, brush, ink) as one of the mere tools for a particular type of painting and could not help but depend only on the unique Oriental aura of its materials.For such shallow approaches to Oriental art, it raises doubts on the initial intention for studying tradition Korean art as they may as well study Western art and explore their creative possibilities within the broad realms of contemporary art.

As for such reasons, traditional Korean art encounters yet another problem –distinguishable to one it faced in the late 20th century – that confronts its fundamental reasons for existence. This is an opinion that does lie on the harsher scale of critiques as there are nonetheless positive remarks towards these various experimentations.The flaws of traditional Korean art have long been exposed, but even compared to neighbouring countries that possess similar modern history, it has not fruited any remarkable achievements up until the 21st century and leaves much to be desired. Artist Dongwon Lee majored in Oriental art at university. Following her graduation, she has dedicated many years to study traditional Korean art, unlike many of her peers, in an attempt to understand and actualise the inherent possibilities of modernisation. In spite of an easier path, for over 10 years, she has reacquired the skills of oriental calligraphy and honed the traditional brush techniques with the strong belief of the need to understand the tradition to establish a strong foundation in modernising its art.

This decision to do soarose from her strong volition to demonstrate her unwillingness to disguise any technical incompetence as if it was a contemporary application or a creative reinterpretation of Oriental art.It cannot be said that it is an absolute requirement to fully understand the traditions in order to modernise it because there are examples of one or two people who ignited a revolutionary change in the history of art without the thorough process of acquiring the traditional skills. Even so, Artist Dongwon Lee is not satisfied with the sole acquisition of the traditional painting skills and continues to exert honest efforts into studying the spiritual context of traditional Korean art and her honest methods prove that her artworks are deemed worthy of trust.

In her latest solo exhibition, an anecdotal representation of the virtuous foregoers that she has come across during her traditional Korean art studies will be exhibited through her pieces. Some of the backgrounds in her work of art are recognisable sceneries and some are sites that only exist in records and paintings.Artist Dongwon Lee has carefully studied the historical figures who had been the object of respect and admiration and selected the appropriate scenery that reflects their spiritual values.It is eagerly anticipated that through her artwork – that have been produced from studying and exploring the sites through multiple field investigations – the audience will be able to feel a shared appreciation for and be moved by the foregoers’ life and values.In addition, a comparably progressed version of the artist’s plum blossom painting and an installation of plum blossom paintings drawn on draped ramie fabrics will be exhibited.It is hoped that the audience will be able to identify with the hopes of our ancestors, to actualise an idealistic world into reality, from walking through the installations.The artworks of this exhibition expresses the foregoer’s noble mentality and also has its premises upon the artist’s sound advancement in modern Korean art so we cannot but help anticipate her future artworks.Artist Dongwon Lee hasstrived for the modernisation of traditional Korean art from the very beginning and so it is safe to say that she will not settle for the prestige of traditional art.Through vigorous attempts and experimentations, the proper function of the arts is to open up new prospects in the field, and so, let it be remembered that what is called revolution is yet another name for what used to be tradition and appreciate the artist’s devotion towards her endeavours.

Junggoo Bahk
KSD Gallery, guest curator, Researcher at the Korean Art Research Centre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