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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 키운 매화를 그림으로 피워내다. – 고재식

이미 숨이 떨어진 듯한 마른 둥치에,
가지 하나가 쭉 뻗어 올라
몽글한 꽃망울을 맺었다.
칼바람 눈보라 속,
매화경(梅花境)이 열렸다.

중국 송(宋)나라 때 송백인(宋伯仁)의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를 건네주고, 몇 달 뒤 달리는 기차에서 매화꽃과 벚꽃의 차이에 대해 그림을 그려가며 얘기하던 것이 딱 10년 전이다.
이 때 나는 “매화는 꽃잎 끝이 동그스름하고 봉긋하며, 난꽃도 매화처럼 피는 것을 매판(梅瓣)이라고 하여 귀하게 여기는데, 벚꽃은 꽃잎 끝이 V자 모양으로 갈라져 있다. 또한 매화는 난(蘭)처럼 꽃 눈 하나에 하나의 꽃을 피우지만, 벚꽃은 혜(惠)처럼 꽃 눈 하나에 여러 개의 꽃이 달린다. 그리고 매화는 꽃받침이 꽃을 위로 감싸 안고, 벚꽃은 아래로 벌어진다. 특히 매화는 꽃줄기가 없고, 벚꽃은 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매화의 정신보다는 매화의 생태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해 겨울 작가는 {묵매도연구(墨梅圖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 작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붓으로 그리는 매화에 앞서 머리와 가슴속 그리고 온 삶 속에 매화를 심고 가꾸어 왔다. 동양의 전통적인 서화 수련법인 독첩(讀帖)과 회화사(繪畵史) 공부를 통해 먼저 매화를 이해하고, 이를 시문학의 영역에까지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마당에도 화분에도 매화를 심어 키우지는 못했지만 발길은 매화가 피는 곳이면 하동, 섬진강 등 전국의 산하 곳곳에 미쳐 자연 속의 매화를 만났다. 또한 전시를 여는 며칠 전까지 매화를 찾아 다른 나라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하니, 작가의 매화에 대한 열정은 더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사실 이태 전 우현(又玄) 선생님 문하에서 새로운 그림 공부를 시작할 때까지 작가가 매화를 그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작가의 매화 그림을 본 일도 없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작가는 몽중매(夢中梅)를 그릴 정도로 매화에 빠져 있었고, 매화벽(梅花癖)에 빠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많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중국의 매화 자료를 모으면서, 매화를 잘 그렸던 작가의 작품을 임모하였는데, 이는 너덜너덜한 <<매화보(梅花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은 잔재주와 여기(餘技), 또는 자기자랑을 일삼는 시대인 탓도 있지만 군자와 문인이란 이름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시대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손수 그린 매화 병풍을 두르고, 매화 벼루를 쓰고, 먹은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煙)을 쓰고, 시는 매화백영(梅花百詠)을 본떠 짓고,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걸고, 시를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마시고, 강매수옥(絳梅樹屋), 매화구주(梅花舊主), 매화경(梅花境), 매수(梅叟), 매화시경(梅花詩境), 만폭매화만수시(萬幅梅花萬首詩), 홍란음방(紅蘭吟房)이란 인장을 사용하고, 육장(六丈)의 큰 매화를 장륙철신(丈六鐵身)의 불상에 비유하고, ‘나는 매화를 그리면서 백발에 이르렀네(吾爲梅花到白頭, 오위매화도백두)’란 시를 짓고 이 글귀를 새긴 인장을 사용한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 1789-1866)에 작가를 비유하면 어떨까? 아니면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 학예(學藝)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현모양처(賢母良妻)의 표상인 신사임당(申師任堂)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작가는 옛 분들만큼 매화를 사랑하고 삶도 그러하니 넘치는 말은 아니란 생각이다.

작가의 매화 그림을 재료와 기법이란 측면에서 보면, 번짐이나 효과가 잘 나타나는 화선지를 마다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닥으로 만든 한지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이다. 매끄러움보다는 거친 것으로, 번짐의 우연성보다는 선의 무게ㅘ 힘으로 키운 용틀임하는 매화 가지와 땀으로 연 꽃망울은 그래서 더더욱 진솔하다.

매화는 사군자 가운데서도 으뜸이며, 선비의 맑고 높은 지조와 더불어 시린 겨울을 깨치는 봄의 희망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작가는 매화를 통해 전통적 관념의 경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숨죽인 겨울을 물리치고 현실의 암울한 벽을 깨뜨릴 수 있는 밝은 희망과 새로운 힘을 주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불혹(不惑)을 넘어서는 작가 자신에게 있어서 매화는 이제 그의 육신이자 혼이며, 가정이나 아이들처럼 꿈에도 못 잊을 사랑이며,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란 느낌으로 다가선다.

매화 그림은 보통 매화만을 그린 <매화도(梅花圖)>, 숨어 사는 선비가 책을 읽는 정경을 그린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도(探梅圖)>로 구분할 수 있으며, 여기에 새가 더해지면 <매조도(梅鳥圖)>, 달이 더해지면 <월매도(月梅圖)>, 당(唐)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고사를 그린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와 <설중탐매도(雪中探梅圖)>, 송(宋)나라 때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고 살았다는 임포(林逋)를 그린 <매처학자도(梅妻鶴子圖)>, 벗과 화분이나 화병의 매화를 감상하는 <상매도(賞梅圖)>, 먹으로만 그린 <묵매도(墨梅圖)>, 꽃의 색에 따라 <백매도(白梅圖)>, <홍매도(紅梅圖)>, <청매도(靑梅圖)> 등으로 구분한다. 작가는 매화꽃을 그릴 때 홍.백.청매(紅.白.靑梅)에 구분을 두지 않았으며, 몰골(沒骨)과 구륵(鉤勒)을 아우르고, 새로운 감각의 <매화서옥도>뿐만 아니라 <<매화보>>와 단원 김홍도(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 청(淸)나라의 이방응(李方膺, 1695-1755)를 본뜨고 재해석한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가 그리는 매화의 정신적 바탕과 기법적 근원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매화 그림은 소재와 재료, 기법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재해석하고 융합하여 이 시대 매화 그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진솔한 마음으로 매화를 사랑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이 모두 가슴속에 키운 매화를 그림으로 피워낸 것이기 때문이다.

고재식(서화사가/[주]마이아트옥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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