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의 매화전에 부쳐 – 우현 송영방
잎을 다 떨군 만추의 계절, 앙상한 가지가 창공을 가르는 그런 때 하늘을 올려다 본다. 골기(骨氣)를 보기 위해서다.
창공(蒼空)은 화선지요 검게 보이는 가지는 묵선(墨線)으로 비유되기 때문인데, 매화(梅花)를 그리자면 먼저 꽃보다 가지의 구성을 잘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화라는 그 이름 자체가 진부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선인들이 고르고 골라 수천 년 동안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았음은 분명하다. 서양의 모차르트, 바흐,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음악이 오늘날의 음악가에 따라 음색이나 음악성이 이 시대에도 듣는 이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역시 시공을 초월한 불멸의 예술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표현 양태가 시대에 따라 현대적이냐, 지금 사람들의 예술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매화가 그림에 등장한 것은 중국의 송(宋)나라 이전부터 시작하여, 그 후 우리나라의 수많은 시인, 묵객(墨客)들도 다루어 왔다. 나는 매화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를 쓰거나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감흥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 봄 밖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고, 차가운 바람에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고 피어나는 하야면서도 살짝 푸른빛이 도는 청악소판(靑萼小瓣, 푸른 꽃받침의 작은 꽃잎) 청매(靑梅)의 그 기품 있는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선생의 절친한 벗이었던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 1783-1859)이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8-1893)에게 준 시에서 ‘매화와의 인연은 온갖 꽃과의 인연보다 소중하다(梅花緣重百花緣, 매화연중백화연)’라고 한 것이다. 중국 청(淸)나라의 정섭(鄭燮)은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자기 집 한 쪽 벽에 흰 횟가루를 바르고는 그 앞에 일장수죽(一莊修竹, 한 둘레 긴 대나무)을 심어 달빛 그림자가 벽에 마치 수묵화처럼 비치면, 이 그림자를 선생님 삼아 공부하여 대성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또한 용자(用字) 창호지 문을 달아 안뜰 창문 가까이 매화를 심어놓고는, 달 밝은 밤이면 방안 불빛을 줄이고 창문에 비친 매화가지에 핀 꽃을 바라보며, 소소밀밀(疎疎密密, 성기고 빽빽함)한 가지의 구성을 보고 먹을 갈아 수묵으로 매화를 쳐 본적도 있다. 그러면 그냥 상상으로 그리는 것보다 한결 자신감이 생긴다. 매화 그림은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에서도 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루어 왔는데 송원(宋元)을 거쳐 명청(明淸)에 이르기까지 서위(徐渭), 석도(石濤), 허곡(虛谷), 팔대산인(八大山人), 양주팔괴(揚州八怪)의 이선(李鮮), 이방응(李方膺), 김농(金農), 왕사신(王士愼), 청(淸)나라 말기의 오창석(吳昌碩), 제백석(齊白石), 조선시대에는 申師任堂(신사임당), 어몽룡(魚夢龍), 오달제(吳達濟), 이인상(李麟祥), 심사정(沈師正), 김홍도(金弘道), 조희룡(趙熙龍), 허련(許鍊), 전기(田琦) 등이 명가(名家)로 불리고 있다. 역시 좋은 소재는 어떻게 표현하여 그 시대에 공감을 불러 일으키느냐 하는 것이며, 이런 이유로 다시 뒷사람이 새로운 예술 감성으로 똑같은 소재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동원이 수년간 매화공부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매화전(梅畵展)을 갖게 되었는데, 그는 매화그림에 몰두하다 꿈을 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몽중매(夢中梅)가 현실로 득심응수(得心應手, 마음 속에서 터득한 대로 손이 저절로 따름)하고, 의재필선(意在筆先, 그리거나 쓰기 전에 반드시 뜻을 먼저 세움)으로 고독하게 멀리서 관조하다 보면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이루어냄)의 기(氣)가 발아(發芽)되어 개성적인 진정한 매광(梅狂)과 매노(梅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앞으로 거속(去俗, 속된 기운을 없앰)하여 습관적 틀을 벗어 던지고, 절대 자유의 창작 세계와 천취(天趣, 자연스러운 정취)가 작품에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품격 있는 매화 화가로 탄생하기를 바라며, 우리의 눈높이를 넘어서는 감성과 노력으로 전통을 이으면서도 오늘을 관통하는 매화경(梅花境)을 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다.
우현 송영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