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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14 – 백운동별서(白雲洞別墅)

백운동별서, 122,.7×73.5㎝, 한지에 수묵담채, 2015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546번지 안운마을에 위치한 전통 원림으로 이담로(李聃老, 1627-?)가 조성하여 현재까지 12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백운동별서는 월출산 옥판봉 남쪽 기슭을 끼고 백운곡의 동쪽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별서는 살림집인 본제本第에서 떨어져 인접한 경승에 은거를 목적으로 조성한 제2의 주거를 일컫는데 이곳은 차폐림 구실을 하는 대나무숲,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등 상록수림과 집 옆을 흐르는 계류에 의해 아래쪽 안운마을과 이중으로 차단되어 있다. 마당에 자리한 유상곡수流觴曲水와 상하 방지方池의 수로는 별서 밖의 계곡물을 자연스레 끌어들인 계류형溪流型으로 전통 호남 원림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경사면을 따라 지어진 축대를 3단으로 쌓아 화계를 조성해 모란과 각종 화훼와 나무를 심었다. 아래쪽 정자의 높이는 본채와 비슷하다.

1801년에 강진에 유배온 정약용(1762-1836)은 이후 18년간 이 고을에서 놀라운 학문적 성과를 거두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1812년 9월 12일 초의선사와 만나 월출산을 등반하고 이담로의 후손인 이덕휘(李德輝, 1759-1828)의 별서를 방문하여 하룻밤을 묵었다. 이후 다산은 백운동 12경시 연작을 지었으며, 초의선사(1786~1866)는 <백운동도(白雲洞圖)>와 <다산도(茶山圖)>를 그려 《백운첩(白雲帖)》을 만들었다.

그림은 백운동 별서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정약용의 방문과 그의 눈에 비쳐진 백운동 12경을 담았다.

다산이 지은 백운동12경은 다음과 같다.

제1경 ‘옥판상기玉版爽氣’. 다산은 그림 상단에 펼쳐진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을 백운동의 으뜸으로 꼽았다.
제2경 ‘유차성음 油茶成陰’. 화면 좌측 하단에 별서로 들어오는 좁은 길과 나란히 수백 년 된 굵은 동백나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빽빽함이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만드는데 이러한 동백나무 숲의 그늘을 말한다. 산다山茶 또는 유차油茶는 동백나무의 별칭이다.
제3경 ‘백매암향白梅暗香’.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동도」에는 다산이 방문했을 무렵 원래의 100그루가 유지되고 있지 않았던지 매화나무가 한 그루만 있다. 집둘레를 따라 심은 담장 안팎의 100그루 매화 언덕이 있었던 기록에 근거하여 원래의 별서 모습으로 그렸다. 늦은 겨울, 100그루의 홍청매가 피어날 때면 신선세계에 있는 듯 황홀경을 느끼기에 충분할 듯하다.
제4경 ‘풍리홍폭楓裏紅瀑’. 그림 좌측 가장 아래에 별서로 들어오기 전에 건너는 돌다리가 놓이고 바위와 다리 사이로 시내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진다. 바위 위의 단풍나무의 붉은 빛이 물방울의 포말을 홍옥紅玉처럼 물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림에는 시냇물의 흐름만 나무 뒤에 살짝 그렸다. 폭포는 전체의 폭이 커지지 않게 하려고 생략하였다.
제5경 ‘유상곡수流觴曲水’. 별서 밖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마당을 돌아 나가는 물굽이에 띄운 술잔.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물이 고이는 상하 방지方池에 석가산과 연꽃이 있었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 은은한 암향이 퍼지고 술잔을 띄워 시회를 하는 풍류객들이 나누던 정겨운 소리를 상상하며 유상곡수 주변에 인물들을 배치해 보았다.
제6경 ‘창벽염주蒼壁染朱’. 그림 좌측 하단에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의 붉은 글씨이다.
제7경 ‘유강홍린蕤岡紅鱗’. 그림 중앙 하단에 언덕 위에 펼쳐진 소나무 숲인 정유강貞蕤岡의 용 비늘 같은 소나무 껍질을 가리킨다.
제8경 ‘화계모란’. 그림 중앙의 꽃 계단에 심은 모란이다.
제9경 ‘십홀선방十笏禪房’. 그림의 제이사분면에 자리한 취미선방翠微禪房을 가리킨다. 십홀은 아주 작다는 뜻인데 홀은 신하가 임금에게 조회할 때 공경의 뜻으로 들고 있던 길쭉한 작은 판이다. 이 판을 10개 이은 크기의 작은 방이라는 뜻이다.
제10경 ‘홍라보장紅羅步障’. 별서의 군데군데 심어져 있는 단풍나무가 깊은 가을이 되면 연이은 붉은 단풍잎이 햇빛을 가리며 마치 곱고 선명한 붉은 비단 장막처럼 보이게 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눈이 부실 것 같은 상상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제11경 ‘선대봉출仙臺峯出’. 그림 중앙 하단, 제7경 유강홍린이 자리한 곳에 정선대라는 정자가 있는데 그곳에서 월출산을 바라보면 시야에 가림이 없이 옥판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장관이 펼쳐진다. 정선대에 서있노라면 빽빽한 동백 숲에 둘러싸여 분지 같이 자리한 이곳을 살짝 부양해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독특한 기분이 들기도 하며 별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12경 ‘운당천운篔簹穿雲’. 별서의 우측 담장을 따라 길게 자리한 왕대나무숲을 가리켜 운당원이라 하였다. 운당원에 우뚝 솟은 대나무가 하늘로 솟아 구름까지 닿을 듯하다.

소쇄원과 함께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선비의 마음과 이상을 담아 만들어진 특성을 살려 마치 신선 세계처럼 그렸다. 그림은 공간의 위아래 개념이나 투시법, 계절감 등을 초월하여 동시에 12경을 표현하였다. 여러 각도에서 봐야하는 풍광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고지도나 궁궐도에 사용된 다중시점투시법을 사용하였고 각각의 자연물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를 기준으로 사계절을 모두 담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도학(道學)이 실현된 자연 공간 즉 유토피아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다.

–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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