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16 – 여유당(與猶堂)
여유당, 79×65㎝, 한지에 수묵담채, 2021
1818년 9월4일 18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정약용은 고향에 돌아왔다. 같은 시기에 흑산도로 유배를 간 형은 끝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다산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과 중풍으로 말이 헛 나오는 질병과 싸우면서도 제자들과 학문연구에 몰입하는 것으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했진 않았을까? 그렇게 일구어낸 500권이 넘는 방대한 성과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다산이 고향 언덕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떠했을까? 쇠약해진 육신과 자신의 연구를 알아주는 이 없는 쓸쓸하고 비 내리는 적막한 가을날의 고향은 인생무상 바로 그 자체를 보여주는 풍광이었을 것 같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여기저기 쓰라린 상흔들이 가득하였을 것이다. 얼굴도 못 보고 죽어간 자식과 며느리, 더 이상 무언가를 펼치기엔 노쇠한 자신과 고향 여기저기를 바라보면 떠오르는 죽은 형제와의 추억들, 그리고 자신을 알아주던 이들의 부재 등이 그를 더욱 눈물겹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일에 몰입한 강도만큼 회한의 크기도 거대했으리라 여겨진다.
다산은 눈에 비친 고향 마재 마을의 적막한 풍경을 「동고석망東皐夕望」의 시로 표현하였다.
죽음에서 돌아오니 망연하여라
지팡이 짚고 강가에 다시 서니
온통 누런 잎, 외진 마을에 비는 내리고
점점 산봉우리는 석양에 밝아라.
白死歸來意惘然 백사귀래의망연
枯笻時復倚江邊 고공시부의강변
一苞黃葉深村雨 일포황엽심촌우
數角晴巒落照天 수각청만낙조천책을 안고 돌아온 지 3년인데 함께 읽어줄 사람 하나 없네.
抱歸三年 無人共讀
그림은 다산이 고향 마을에 막 돌아왔을 어느 시점이다. 비가 내리는 쓸쓸한 가을 날, 온통 누런 잎으로 덮여있는 고향의 풍경이 석양에 더욱 진하게 다가왔을 느낌을 담았다. 유유히 물이 흐르듯 세월은 어느덧 흘러 인생의 종착지가 더 가까운 느낌인데 이상한 것은 이제야 산봉우리가 뚜렷이 보인다. 젊은 날엔 알 수 없던 삶의 이치가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되는 현상을 자연의 이치에 담아 표현하였다.
–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