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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19 – 초정 박제가 초상(楚亭 朴齊家 肖像)

초정 박제가 초상, 135×74㎝, 비단에 채색, 2020

그림은 청나라 나빙이 그린 박제가 전신상을 바탕으로 하였다. 자신은 물소 이마에 칼날 눈썹을 지녔고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가졌으며, 고고한 이만을 가려서 더욱 가까이 지낸다고 소개한 박제가의 「소전」의 글을 반영하였다.

나빙의 그림에서 박제가의 얼굴과 몸의 비례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몸에 비해 상당히 큰 비율의 얼굴 크기를 느낄 수 있는데, 얼굴에 비해 어깨가 유난히 좁아 보이는 체형이라는 것도 관찰할 수 있다. 추측컨대 태음인의 체질을 갖고 있을 듯하다.

초상화의 전체적인 표현 기법과 형식은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초상화」를 기준으로 18세기 후반의 초상화 양식에 맞추고자 하였다.

박제가는 1779년 3월 정조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특채되어 이후 청나라 사신이 파견될 때 사신의 수행원으로 다녀왔다. 그 뒤 1785년 전설서 별제와 1791년 정조의 특명으로 정3품 임시 군기시정, 1792년 군기시정 등을 거쳐 부여현감 1794년(정조2년) 2월 춘당대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 오위장, 1796년 양평현감, 영평현감, 부여현감 등을 역임했다. 정조 사후 1801년 그와 친분이 있던 윤행임이 노론벽파의 공격을 받고 몰락하면서 유배되었다. 초상화는 생애 중에 가장 높은 품계를 그려주는 것이므로 박제가의 생애에서 가장 높은 품계는 1791년 임시 군기시정으로 정삼품 당하관에 해당한다. 영조대의 「속대전 續大典」을 기준했을 때 당하관은 백한흉배와 삽은대를 사용한다. 백한은 치雉의 일종으로 깃털이 주로 백색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백색으로만 묘사되진 않으나, 꼬리의 깃털 모양이 마치 봉황꼬리와 같이 파상형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꼬리는 다섯 가닥을 드리우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최초의 백한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17세기 초의 〈임장 초상〉이다. 그림은 〈임장 초상〉과 〈유숙 초상〉의 백한흉배와 삽은대를 참고하였다. 흉배의 채색 재료는 강렬한 색상과 중후한 질감이 느껴지는 광물성 석채의 진채로 하였고 꽃과 백한을 그릴 때는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바느질을 구사한 자수의 느낌을 표현하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사모의 높이가 높아지는 특성을 적용하여 높은 오사모烏紗帽에 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 좌상으로, 좌안칠분면을 취하고 있다. 관복의 형식은 조선후기의 가장 전형적인 관복상인 〈윤급 초상〉을 기준으로 하였다. 복식은 잠자리 날개 무늬가 어린 높은 사모를 쓰고 짙은 녹색 비단에 시원하고 큼직한 구름무늬와 상서로운 칠보무늬가 수놓인 운보문단의 단령을 입고 있는데 박제가의 활동 시기와 가장 유사한 시대라는 측면에서 기준을 잡았다. 단령의 트임 사이로 청색내공과 백색 철릭이 보이는 것과 양발이 팔자형으로 족좌대 위에 놓여있는 모습도 참고하였다. 화문석이 깔린 의답, 의자와 목리문은 1792년 이후에 이명기가 그린 〈오재순 초상〉의 의답(족좌대)과 〈윤급 초상〉의 화문석을 결합하였고 목리문과 형태는 〈오재순 초상〉을 반영하였다.

얼굴은 전면에서 적갈색 필선으로 윤곽을 선묘하고 얼굴 전체의 채색은 분홍색과 살색의 진하기를 조절해 가며 뒷면에서 여러 번 쌓아주었다. 광대뼈와 콧등, 이마와 턱의 돌출 부위는 비단의 뒷면에서 물감을 두텁게 쌓아 전면에서 봤을 때 밀도감 있게 보이도록 하였다. 적갈색 담채로 얼굴을 자세하게 선염하여 명암을 표현했는데, 90%이상을 배채로 처리하고 10%정도의 마무리는 전면에서 가벼운 채색으로 마무리 하였다. 광대뼈부위에는 연지와 황토를 섞어 홍기를 주었다.

눈동자는 1796년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체를 그린 〈서직수 초상〉의 표현기법을 반영하였다. 검은 동공 주위를 등황색으로 강조하고 푸르고 초록의 기운이 마치 안에서 바깥쪽으로 타오르듯 번지게 눈동자를 묘사하였다. 눈 안쪽과 끝에 붉은 기운을 삽입하여 생동감을 나타내는 방식도 적용하였다. 눈 밑에 둥글게 늘어진 주름을 비롯하여 콧망울 끝에서 양 입가로 내려오는 팔자형 주름선인 협과 법령 주변엔 붓질을 약간 몰리게 하여 요철감을 주었다. 입술은 외곽선 바깥쪽에 아주 밝은 살빛 선을 다시 한 번 그려 도드라지게 하였다. 육리문을 표현하게 되면 사실적일 수 있으나 자칫 사실과 다른 정보를 보는 이에게 줄 수 있어 최대한 자제하였다.

–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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